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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를 다녀와서

조회 12,221

2009-07-14 09:44

소록도를 다녀와서

소록도 자원봉사를 다녀와서 <영화과 4학년 최지영>

편입을 통해 영화과에 들어와서 세번째 학기가 시작되었다. 지난 겨울방학부터 준비한 졸업 작품은 시나리오 단계에서 여전히 부담만 가득했고, 하루하루가 괜히 피곤한 일상이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다녀와서 트랜스젠더, 동성애자, 미혼모, 싱글맘 등 사회의 소수여성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었던 나는 우연히 학교에 붙어 있는 벽보를 통해 소록도자원봉사단을 모집한다는 좋은 기회를 알게 되었고, 몇 년 전 영화제를 통해 보았던 다큐멘터리 <동백아가씨>의 할머니를 떠올렸다.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는 할머니의 모습. <동백아가씨>는 역사와 사회로부터 존재마저 거부당한 채 살아온 소록도의 한센인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일그러진 얼굴, 손가락이 모두 사라져 뭉툭해진 손, 무릎 아래로 사라진 다리. 화면 속의 그들조차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던 내가 ‘문둥이’ 라는 멍에를 지금도 벗지 못한 채 살아가는 할머니와 다른 소록도 한센인들을 만난다면 이제는 그들의 어깨를 끌어안아 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내가 겪고 있는 20대를 겪었던 그들이 꿈꾸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소록도자원봉사단 발표가 나고 출발날짜만 기다리던 나의 마음은 설레어 이미 한껏 들떠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7월 7일 봉사단은 소록도로 출발했다. 세 시간 정도 지났을까? 빗줄기는 더 세져 그치질 않았고, 소록대교를 건너는데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아직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엔 한참이나 부족한 내 마음 때문이었다.


역시나 그저 그들을 보고 싶었던 단순한 호기심일까? 외로운 그들을 감싸주려고 시작된 3박4일 여정이 걱정되었고, 부끄러움이 단번에 와서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더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지러움이 심해질 즈음 소록도 입구가 가까워졌다. 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배를 타고 다녔다고 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생각보다 가까운 소록도. 가까운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소록도의 그들과 가까워져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첫째 날의 잠이 들었다.


본격적인 자원봉사가 시작되는 둘째 날. 아침 기상은 6시. 평소 낮과 밤이 바뀌는 올빼미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일어나는 것부터 힘들었고, 밤새 물린 모기떼에 짜증이 났지만 고작 부족한 잠과 모기에 짜증을 낸다는 것 자체에 한심함을 느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속해 있는 B팀에서 맡은 봉사는 미용봉사와 쓰레기장 분리수거였다. 분리수거를 하기위해 찾아간 쓰레기장에 쌓인 쓰레기는 겉으로 보기에도 꽤 오래된 것으로 보였다. 쓰레기가 담겨있던 마대자루와 봉투는 이미 썩어 터진 상태였다.


엄청난 악취와 오물들. 내 방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는 내가 다가가기엔 구역질이 먼저 나왔다. 봉사단원들은 구역질과 쓰레기에 몰려있는 벌레들을 참으면서 분리수거 작업을 했다. 분리수거가 되지 않고 쌓여있는 쓰레기들의 대부분이 자원봉사들의 것이거나, 관광으로 소록도를 방문한 사람들의 것이었다.


우리 자원봉사자들은 이러면 안 된다고 다짐했다. 분리수거 작업은 점심식사 후 오후까지 이어졌다. 오후에는 분리수거와 쓰레기장 옆 공터 땅의 돌을 수거해서 모아두는 일이였는데, 이곳은 유채꽃을 심고 공원이 만들어질 곳이라고 했다.


오후작업도 끝나고 혼자 있는 시간이 생겨 날씨도 좋고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소록도는 차를 타고 다니기 보다는 걷기 좋은 곳이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멀리서 걸어오시는 할아버지 한분을 만나게 되었다.


대부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셨는데, 잘 걷지도 못하시는 할아버지는 걸어서 교회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말동무가 되어드리길 자청했고, 할아버지는 대뜸 비행기를 타고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4년 전 소록도에 들어왔고, 젊었을 때 학교를 다니고,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했던 그 시절로 가고 싶다는 말씀이셨다. 70평생을 넘게 살아오시면서 겪었던 일과 추억들을 들려주셨다.


주머니의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이시려다 말고 붙이시려다 말고 끝없는 얘기를 하시는데, 그동안 참 외로우셨구나 하는 생각에 할아버지 곁을 떠날 수가 없어 집까지 모셔다 드리기로 했다. 할아버지는 소록도에 있으면서 시를 쓰시고, 시집도 내셨다고 했다. 그동안 쓰신 시를 들어보겠냐며 부끄러워 웃으시는데 할아버지의 어깨를 잡아드렸다.


할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동안 같은 시를 다섯 번 정도 반복해서 듣는데,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이런 것뿐이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집 앞에 도착해서도 집에 들어가시지 않고 의자에 좀 앉아있다 가겠다고 하셨다.


여전히 이곳의 일상은 할아버지에게 지루하고 외로움의 반복이었다. 할아버지와 헤어져서 미용봉사 하는 친구들과 숙소로 올라가는데 서로 만난 소록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그저 우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셋째 날 아침이 왔다. 금요일까지 비가 올 것이라는 기상예보와 달리 날씨가 너무 좋았다. 온통 주위가 녹색이라 높은 하늘까지 기분이 좋았다. 오늘 맡은 일은 신생리 마을봉사였다.


오전에는 ‘사랑의 집’ 옆 창고를 청소하는 일이었는데, 창고는 매주 한 번씩 장이 열리는 곳이라고 했다. 청소를 꽤 오랫동안 안했는지, 먼지와 거미줄, 바닥에는 이끼가 가득 끼여 있었다. 물건들을 다 드러내고 물청소를 했다. 창고도 깨끗해지고 더운 날에 하는 물청소는 나와 우리 팀 모두를 시원하게 했다.


잠깐 쉬는 동안 할아버지 두 분이 소록도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직원들을 제외하고는 노인들만 살아가고 있는 이곳은 자신들이 죽으면 10년 내에 없어져 관광지로 바뀔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재건축도 지원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너무 아름다운 섬 소록도에 사람들이 죽으러 들어온다니, 마음이 아팠다.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내 생각보다 너무 안타까웠고 다가가서 직접적인 도움을 드리기에는 우리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이 너무 작았다. 어제 돌을 치웠던 공터가 공원으로 변한다는 것이 소록도 주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관광객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에 괜한 심술마저 났다. 작은 창고하나 치워드리는 것에 너무 고마워하시는 할아버지를 보는 것에 죄송했다.


오전 작업이 그렇게 끝나고 오후에는 신생리 마을의 주민들이 사는 곳에 잡초 뽑는 일을 했다. 할머니가 잡초를 뽑는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뭉툭해진 양쪽 손으로 고맙다며 쉬었다 하라고 아이스크림이 담긴 봉지를 건네 주셨다.


아이스크림을 받아먹고 있는데,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여름휴가 때마다 시골에 가면 마을 입구에 있는 슈퍼까지 가셔서 녹아서 뚝뚝 떨어지는 아이스크림과 단팥빵을 사다주신 할머니. 내가 외할머니가 보고 싶은 것처럼 이곳에 살고 계신 분들도 가족들이 보고 싶으실 텐데.


지금은 가족들과 일반인들의 방문이 가능해졌지만, 철조망을 쳐놓고 남편, 아이들과 헤어져 살아야만 했던 격리 시설로 이용되던 예전의 이곳은 상상도 할 수 없이 안타까웠다.


처음 소록대교를 건너면서 느꼈던 먹먹함은 오히려 일정이 마무리 되어가면서 심해 졌다. 그들의 외로움을 알고 다가가서 감싸주기엔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길어서 지겨울 줄 알았던 3박 4일의 여정은 금세 끝이 다가왔다.


나는 이것은 끝이 아닌 시작임을 알고 있었다.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는 시작. 일반인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심적 거리감은 익숙지 않아 낯설기 때문 이였다.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손녀, 손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곳에 그들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3박 4일간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소록대교 위에서 바라보는 높은 하늘과 바다는 그저 넓고 파랗다. 왠지 기분이 좋다.


<종합홍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