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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스펙 인문대생이 북유럽에서 팀리더가 되기까지

조회 8,241

2020-06-29 14:30

2001학번 영어학과 문병희 졸업동문
입사 12년만에 선박·플랜트 다국적기업인 바르질라 팀리더로 성장
처음엔 국내 중소기업에 입사해
품질관리와 영문 서류된 업무 담당하며 실력 키운 뒤 더 큰 도전

문병희 동문 후배들에게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갖추려 하지 말고 작은 기회도 잘 살리고
첫 직장을 고를 때 연봉·인지도 등 회사 자체의 지표보다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시간을 들여 고민해보라고 조언

‘핀란드’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지금은 많이 잊혀지긴 했지만 휴대전화로 유명한 노키아(Nokia)라는 기업을 혹시 기억하실까요? 오래된 외국영화를 보면 노키아 특유의 벨소리를 들을 수 있죠.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요?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무민’, 디자이너 브랜드인 마리메꼬(Marimekko), 그리고 멋드러진 북유럽풍 그릇 브랜드 이딸라(Iittala) 등을 떠올리실 거라 짐작됩니다. 이 이름들이 이미 친숙하시다면 저의 취업수기를 더욱 흥미로운 시선으로 보고 계시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선박과 플랜트 분야의 다국적 기업인 바르질라(Wärtsilä)라는 회사에서 12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2008년 바르질라코리아에 입사해 10년 가까이 근무한 뒤 본사인 핀란드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핀란드 생활 3년차에 접어 들고 있네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제가 어떤 동기로 외국계 기업에 지원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계기로 그 회사와 연을 맺게 되었는지 가장 궁금하실 것 같아요. 그 얘기를 하자니 저의 첫 사회생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동서대학교를 졸업하고 국내 중소기업에 취업을 했습니다. 영어를 잘하진 못했지만 영어 전공자라는 사실 덕분에 외자구매팀에 배정되어 근무를 하게 됐지요. 부푼 마음으로 출근한 첫날, 회사의 사정으로 구매와 전혀 관련이 없는 품질관리 부서에서 일을 하라더군요. 처음엔 너무 뜬금이 없어서 "그냥 다른 회사를 준비해 볼까?"하는 마음이 앞섰어요. 하지만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시 취업준비를 하며 시간을 보내느니 월급 받으면서 새로운 분야를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다녀보고 안 맞으면 언제라도 그만둔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요.

입사 후 처음 몇 달 동안은 팀장님 옆자리에서 매일매일 잔소리를 듣는게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업무가 손에 익기 시작하니 차츰 제 업무영역이라는게 생기더군요. 실무이해와 처리에는 공대출신인 다른 동료들보다 시간이 한참 더 걸렸지만 그 당시만 해도 영어로 쓰인 서류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인원이 많지 않아 제게 도움을 요청해 오는 빈도가 점차 늘었습니다. 영문 서류에 대한 업무를 주로 담당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고객요구사항, 제품 검사등에 대한 기술적 지식을 어깨 너머로 습득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다룰 수 있는 업무의 범위도 더욱 넓어졌던 것 같아요. 저에 대한 필요가 자꾸 생겨난다는 것은 제 가치도 함께 높아진다는 것을 그때 느꼈지요.

되돌아보면 저의 인생은 우연히 갖게된 관심이 지극히 주관적인 견지에서 발전해 자격증 취득이나 이직, 부서 이전 등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가령 학부시절 친하게 지냈던 일본인 친구 덕분에 생긴 일본어에 대한 단순한 관심이 교양과목 수강으로 이어졌다든지, 히라가나를 안다는 이유로 맡았던 일본인 검사관 대응업무에 답답함을 느껴 일본어 자격시험을 쳤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모두들 그 정도 급수는 도움이 안된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혹시나 하고 따두었던 일본어 자격증이 훗날 제게 또 하나의 무기가 되어줄 거란 걸 그땐 꿈에도 알지 못했습니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막무가내로 배정받아 시작했던 품질관리 일은 이직의 발판이 되어주었습니다. 준비했던 기업이 외국계 기업이라 영어능력도 중요했지만 특히나 품질관리부서에서의 업무경험이 중요한 입사 요구조건이었어요. 안해본 일이라고 섣불리 발을 뺐다면 영영 갖지 못했을 이 3년동안의 경험이 그 조건을 충족시켜 주어 원하는 곳에 합격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이직해 품질경영팀에서 3년정도를 근무하고 나니 글로벌 포지션이었던 협력사개발 부서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업무를 하며 자연스럽게 쌓인 배경지식에 제 시간을 좀 더 들여 몇몇 자격증을 따두었더니 자신감이 생기면서 이제는 다른 곳을 둘러볼 여유도 생기더라고요. 때마침 그 부서에서 채용공고가 났는데 하필 기본적인 일본어 실력을 갖춘 인원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취득하고도 까맣게 잊고 지냈던, 모두들 보잘것 없다 여기던 그 일본어 자격증이 뜬금없이 이 포지션을 따내는 데 한 몫을 하게 된 것이지요. 이 때 인생이 참 재미있는 게임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자격증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과 자신감이 생기게 된 것도 이 무렵인 것 같아요. 그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국제선임감사원 자격증, 원자력 선임심사원 자격증, 비파괴학회 레벨3 엔지니어자격증 등 16개에 달하는 국제자격증에 도전해 손에 쥐게 되었네요. 이 글을 읽고 갑자기 “아.. 결국 취업하려면 자격증을 엄청 따라는 이야기구나” 하고 곡해하지 말아주세요. 제 모든 자격증은 입사 이후에 그때그때의 필요나 판단에 따라 취득한 것이고, 취업을 준비하던 시점에는 건강한 신체말고는 내세울 게 딱히 없던 인문대생이었으니까요. 다만 저나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늘 관심을 가지려고 했었고 다른 사람들의 비판어린 만류 보다는 제가 내린 판단 쪽의 손을 좀 더 들어줬던 것 같아요. 어떤 종류나 어떤 등급의 자격증이 필요한지는 고용하는 곳의 주관적인 판단이라 누군가가 정확한 조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들도 어딘가에 작은 관심이 생기면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너무 휘둘리지 말고 일을 조금씩 키워가 보세요. 그게 자격증 취득이 되어도 좋고 강의수강이나 대외활동, 창업, 그 무엇이 됐든 좋아요. 이 경험들이 원하는 것을 당장 손에 쥐어주진 못하더라도 '자신감'이라는 돈주고도 살 수 없는 가치를 선물해줄 겁니다. 자신감이라는 자산을 어떤 이유로든 갖게 되면 평소엔 쳐다보지도 못했던 높은 곳도, 내 품보다 크다 생각했던 영역들에도 좀 더 여유롭게 시선을 둘 수 있게 된답니다. 


   이렇게 장황한 글을 풀어 놓으며 제가 여러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갖추려 하지 말라는 거에요. 완벽해질 때를 기다리며 한번의 큰 기회를(또는 지금 시점에서 큰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을) 붙잡기위해 눈앞의 작은 기회들을 무수히 흘려보내는 분들을 볼 때면 안타깝습니다. 작은 기회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 다음 기회를 계속해서 불러올 수 있는 사람이 오랜 기간에 걸쳐 만족스러운 인생을 영위해 나가고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이렇게 말하면 너무 과격한 표현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아무데나 들어가 일을 시작하세요. 그곳이 어떤 곳이 됐든 직장을 다니다 보면 더욱 더 많은 길과 방향이 보인답니다. 인생에 대한 고민은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아요.


   두번째는 첫 직장을 고를때 연봉, 인지도, 복지 등 회사 자체의 지표보다는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시간을 들여 고민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해뜨기 전 출근해서 캄캄한 밤에 퇴근하는 일상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연봉이 높다 해도 그 회사와는 맞지 않겠죠. 사람들을 만나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사람더러 닭장같은 사무실 한 켠에서 하루종일 일하라고 한다면 고역이 따로 없을 거에요. 또한 혼자있을 때 생산성이 높은 사람은 팀단위로 일해야 하는 곳 보다는 재택근무를 지원하거나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회사를 원할 거고요. 입사할 때 부모님과 친구들앞에서 면을 세우기 위해 내 남은 인생은 꾸역꾸역 살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아마 없을 거예요.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환경에 맞는 사람인지를 명확히 알고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집중해 판단을 스스로 내리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분이라면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칠 무수한 문제에서도 나름의 답을 현명하게 잘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인생을 조금 더 산 형, 오빠로서 여러분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면 좋을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단 한분이라도 저의 글을 읽고 영감을 얻는다면 저는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주제넘는 말이 있었다면 미리 사과합니다. 후배들을 아끼는 마음이 앞서서 그런 것이려니 하고 너그럽게 생각해 주세요. 내일 세울 완벽한 계획보다 오늘 세운 불완전한 계획을 행동에 옮기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라며 긴 글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목이나 서론을 보고 핀란드의 직장문화에 호기심을 가질 분들도 혹시 있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이미 긴 글이지만 염치 불구하고 몇 자 더 적어볼까 합니다. 해외취업이나 외국계 회사 취업을 염두에 두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핀란드라는 나라는 매우 가정중심적이고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문화입니다. 출퇴근 시간을 본인 스스로 조절하는 '자율 근무 시간 조절제도(하루 7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월간 근무시간을 추산해 각자 알아서 사용하는 제도)'를 대부분의 회사가 적용하고 있고 실제로 상당히 잘 운용되고 있습니다. 휴가도 상당히 넉넉한 편에 속합니다. 여름 휴가는 보통 4주에서 5주 정도가 주어집니다. 또한 겨울이 긴 북유럽의 특성상 겨울에도 충전을 위해 겨울휴가를 따로 떠나는 문화가 있습니다. 겨울 휴가는 보통 1-2주 정도로 많은 핀란드인들이 이때 기후가 비교적 온건한 남유럽의 섬이나 해변으로 휴양을 가거나, 핀란드의 북쪽 끝자락인 라플란드 등지로 스키여행을 떠나기도 해요. 휴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가 기간동안에는 업무관련 이메일에는 회신하지 않고 휴식에 집중하며 회사에서도 이를 존중합니다.


   직장내 구조 또한 비교적 수평적이며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관계도 상당히 평등해 보입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개인과 법인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직원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거나 과도한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은 아직 경험한 적이 없어요.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핀란드'와 '평등'이라는 단어를 같은 선상에서 떠올리는 것 같아요.
   가정에서는 남녀 모두 사회 생활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여성의 사회참여율이 높은 만큼 고위직에 있는 여성리더들도 흔히 볼 수 있어요. 그 배경에는 잘 정비된 출산휴직제도와 육아휴직제도, 홈오피스(자녀들을 고려해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등의 유연근무제도 등이 큰 몫을 하는 것 같아요. 혹시라도 평등한 조직구조와 자유로운 업무 환경에 관심이 있는 후배 여러분들은 핀란드 뿐만 아니라 유럽에 있는 회사에도 한번 관심을 가져보시는 것도 좋을것 같아요.


  글을 쓰다보니 전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꽤 많네요. 혹시라도 언젠가 기회가 닿아 지금의 생각들을 같은 공간에서 목소리로 전달해 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눕시다. 여기까지 읽어 줘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