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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1호 학점은행제 학위 동서대 교수가 받아

조회 14,355

2006-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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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교수 외국인 첫 학점은행제 학위
받아

우리대학 일본어학과 나카무라 이치로(38) 교수가 학점은행제를 통해 외국인으로선 처음으로 2월 24일 학사학위를 받는다.
나카무라 교수는 행정서사·관세사·통역가이드·아마추어 무선기사 1급·유선통신
기사 등 한국과 일본에서 50여가지의 자격증을 딴, 아주 ‘별난’ 사람이다.
그가 교수로 있으면서 왜 한국에서 공학사 학위를 따게 됐는지, 앞으로의 각오 등을 수기를 통해 들어본다.<편집자주>




"공학사 취득은 어린시절 꿈이자 평생 한(恨) 이었다"


학점은행제를 통해 외국인 1호로 졸업의 영광을 얻게 되어서 너무나 기쁘다. 이번 공학사 학위는 내 어린 시절의 꿈이자 지금까지 내 마음 속의 한이었다.
사람은 누구든지 꿈과 소망을 가지고 성장하는 존재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타협을 하게 된다. 꿈과 현실의 괴리를 실감할 때 누구나 허탈감을 통감할 것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꾼 사람은 많아도 실제로 대통령이 되는 사람은 5년에 한명 뿐이다. 판사, 검사, 과학자, 운동선수는 그보다 수는 많을지 모르지만 역시 상당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나는 ‘어린 왕자’ 소설을 읽을 때마다 주인공이 화가가 되는 꿈을 버린 부분에 감정이입(感情移入)한다. 내 어린 시절의 꿈은 우주소년 아톰에 영향을 받아서 로봇공학의 과학자였다. 나는 ‘어린 왕자’의 주인공보다 오래 꿈을 가졌긴 했다. 그가 6살 때 꿈을 버린 데 비해 내가 과학자가 되는 꿈을 포기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의 진로선택 때였다.
가고 싶은 이공계를 선택하려면, 재수를 하고 별로 이름이 없는 학교로 가야하는 성적이었다. 대신 인문사회계라면 현역으로 명문대학에 갈 수 있다는 판정이 나왔다. 집에서는 장남인 내가 재수하고 무명대학에 간다는 것은 가족이 허락할 턱이 없었다. 2년 동안 부모와 싸우면서 결국 인문사회계로 진학했다.

남들은 나의 명문대 현역합격을 부러워했지만 내 가슴 속에는 충족되지 않은 아쉬움과 자신의 뜻을 굽힌 굴욕감이 지워지지 않았다. 졸업 후 상급공무원으로 일했지만 그것도 사법고시를 포기한 자리에 지나지 않았다. 남의 선망(羨望)도 내게는 포기한 꿈에, 다시 포기한 결과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 일도 1년만에 그만두고 한국에 유학온 것이다.

한편 나와 같은 꿈을 가지고 그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친구들은 재수하고 지방대학의 공과대를 나왔지만, 모두 좋은 기업에 취직해 지금은 기술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나는 그 친구들을 볼 때마다 부러워서 고등학교 시절에 꿈을 버린 내가 미워진다. 대학 2번, 대학원 3번을 다녔지만 그것이 정말 하고 싶은 공부였는지 나 스스로도 의심이 든다.
공과대학의 꿈을 버리지 못해 대학 시절에 공과대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독학으로 기능사나 산업기사급 자격증을 여러 가지 취득했고 “나는 흰 머리가 난 뒤에도 반드시 공과대학에 다닐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 말에 나이든 어머니의 “미쳤냐”는 소리와 눈물을 접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내게 어느 날 한국에서 학점은행제가 시행된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독학으로 학사학위를 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의를 했지만 그 때는 외국인은 안 된다고 했다. 2005년 외국인도 등록이 가능해졌다는 말을 듣고 나는 바로 등록했다. 동서대·경남정보대 사회교육원. 역사도 오래됐고 시설도 좋고 강사진도 우수하다는 소문은 익히 듣고 있었다. 직접 가보니 직원들은 친절하고 그 곳을 방문한 순간 내 학위가 보일 것 같았다.
로봇공학전공은 비현실적으로 보여 전자공학전공과 정보통신공학전공 중 어느 쪽을 선택할까 고민했지만, 자격증인정과목수와 독학사(컴퓨터과학)시험의 기회를 고려해 정보통신공학을 선택하였다.

학점은행제 과정에 등록한 뒤 일반선택은 자격증과 독학사 시험으로 학점을 땄다. 상공회의소에서 실시하는 유통관리사2급과 비서1급은 비교적으로 쉬운 편이다. 이어 독학사 2단계에서 영어영문학전공 시험을 보고 일반선택을 추가했다. 독학사는 전공을 변경할 수 있어서 일반선택과목 학점을 따기 위해서는 학점은행제와 다른 전공으로 수험하는 비법이 있다. 최고 30학점을 18,000원의 수험료와 3만원의 학점인정 수수료로 딸 수 있어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교양과목은 동서대·경남정보대학 사회교육원과 부산디지털대학교의 사이버 강의 그리고 독학사 시험으로 채웠다. 그 결과 등록 부터 1년만에 교양 37학점, 전공 61학점, 일선 54학점으로 졸업요건인 140학점을 크게 넘은 총 152학점을 취득해 2006년 2월 24일에 꿈에 꾸던 공학사 학위를 받게 되었다.
외국인 1호라는 것 외에 순수히 고졸자격으로 도전해 1년만에 졸업을 하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박사과정을 마친 후에 다시 듣는 대학교양. 그래도 한국에서는 교양수업을 수강한 것이 처음이라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생활다도 수업에서는 한·일·중 3개 문화의 다례를 배웠고, 생활부동산 과목에서 집 마련의 전략을 배워 바로 실천에 옮겼다.

물론 내가 공과대 학생답게 실험실습실에서 배우지는 못했고, 지금 공학사 학위를 땄다 해도 기술자로서 활약할 기회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가졌던 꿈을 뒤늦게 찾았다는 것에 평생의 한이 풀린 느낌이 든다.
학점은행제로 공학사 학위를 받은 것이 나의 12년 한국생활 중 가장 성공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꿈을 간직하는 사람만이 평생 젊게 살 수 있다. 미래를 바라보는 자세가 있어야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할 것이다.
앞으로는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3개 분야를 전공한 교육자로서, 학교와 학생들의 다양한 수요에 응할 수 있도록 좋은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동시에 기술, 경영, 법률, 외국어, 외국문화를 이해하는 전문가로서 산학협동을 통해 한국기업의 일본진출, 일본기업과 한국기업의 제휴 등을 지원하는 일에 종사하고 싶다. 한 전공에 고집하는 것보다 다채로운 경력을 가진 사람이 더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실례를 보여주고 싶다. 특히 평생 시야와 활동분야를 넓혀갈 생각이다.

외국인인 내게 좋은 기회를 주신 대한민국 정부, 한국교육개발원 그리고 동서대·경남정보대학 사회교육원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2006년 2월 8일 나카무라 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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