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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학번 졸업생 성공 스토리

조회 15,533

2007-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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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한국 TOP디자인, 2006년 Good Design 회사에 선정

동서공과대학교 - 이것이 내가 1992년 입학 당시의 학교 이름이다. 학교의 첫 인상은 평소 상상하던 대학교의 모습과는 달랐다. 캠퍼스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많은 건물도, 거리를 활보하는 많은 학생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1회 입학생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입학한 산업디자인학과는 공과대학의 부속학과처럼 보일 정도로 조금은 이질적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가 꿈에도 그리던 디자인학과에서의 4년은 나를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입생 동기들의 모습은 미처 고교생의 앳된 모습을 다 털어버리지 못한 듯 고등학교 4학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런 사랑스러운 동기들과 함께 나의 동서공대 산업디자인학과 1학년 생활은 시작되었다.

실크프린트, 디자인스코프, 암실 등 지금은 다소 생소한 도구나 시설이 당시에는 꽤나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디자인학과를 위해 점차적으로 설치되어 갔다. 1회 입학생이라 지도해 줄 선배도 없었지만 하나하나 익혀가면서 디자인 실력을 체득해 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현장학습 그대로였다.

학교의 수업 또한 타 대학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하는 다양한 현장학습 위주로 이루어졌다. 신생 대학의 강점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리라. 학문 위주의 교육보다는 현업에서 사용되는 실제적이고 다양한 커리큘럼은 우리의 감추어진 디자인 감각을 하나씩 일깨워 나갔다.

교수님들 대다수가 디자인회사나 광고대행사에서 오랜 기간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이셨고, 나중에 실무에서 안 사실이지만 그분들은 현업에서도 알아주는 실력가들이셨다. 여름이면 교수님들의 추천을 통해 많은 학생들은 서울의 디자인회사와 광고대행사에서 아르바이트를 경험하며 현장감을 익혀나갔다.

방학기간에는 자신의 실력을 검증해보기 위해 공모전에 열중했다. 많은 동기들은 시간을 쪼개가며 캠퍼스의 낭만보다는 4년 후의 만족스러운 자신의 장래를 위해 투자하였다. 공모전에서의 결실은 서서히 나타났고, 각종 공모전에서 만족스러운 수상결과들을 얻어냈다. 나 또한 산업디자인전이나 광고공모전에 부지런히 출품하였고 좋은 결과들 거뒀다.

이렇게 3년 반은 빠르게 지나갔다. 4학년 여름에 나는 진로를 결정했다. 산업디자인학과라 하면 시각디자인부터 환경디자인, 패션디자인, 제품디자인 등 상당히 넓은 개념을 가지고 있는 학과이므로 구체적인 나의 진로를 결정해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시각디자인 중에서도 브랜딩(Branding)과 연관된 Identity 관련 일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어릴 적부터 기업 로고를 따라 그리기를 좋아했다. 여름방학 기간을 이용해서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 진행했던 작품들과 CI회사에 맞는 로고들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고, 내용 뿐 아니라 패킹(Packing) 또한 특이한 방식과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여 학생다운 신선함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에는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방법이나 노하우를 알려주는 정보가 많이 없던 터라 혼자의 아이디어만으로 만들어 내야했다. 사실, 그게 가장 큰 차별점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될 회사를 찾아야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광고대행사보다는 디자인전문 회사를 더 선호했다.

왜냐하면 순전히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광고대행사의 디자이너는 디자인 결과물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어시스턴트 역할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자인포커스와 CDR이라는 디자인전문회사에 포트폴리오를 제출했다.
디자인포커스의 경우 개발한 디자인 결과물이 상당히 감각적이면서도 아이디어가 출중한 회사였다.

그런데 디자인포커스에서 연락이 왔다. 인터뷰 언제 하실 수 있으세요? “아! 이게 정말이란 말인가?” 나는 중앙동에서 출력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안병진 교수님에게 연락했다. 안 교수님은 자상하시게도 인터뷰하러 갈 때 입고 갈 셔츠, 타이, 바지색상, 구두스타일까지 코치를 해 주셨다. 부산 촌놈이 서울강남의 패션중심지 청담동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디자이너와 인터뷰하러 간다는 게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셨나 보다. 안 교수님 구두로 마무리를 하고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청담동의 풍경은 이국적이었다. 나를 더욱 긴장시켰다. 회사는 청담동 큰 길 옆에 자체사옥을 가지고 있을 만큼 크고 튼튼해보였다. 2층 입구에 들어서니 여우모양의 조형물이 마치 손님을 맞이하는 양 애교스런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사장님은 놀랍게도 여자분이셨다. 작은 체구지만 분명한 말투와 힘있는 눈빛에서 매우 실력있는 디자이너이시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아직까지도 그분의 질문이 생각난다. “그래, 몇 개월이면 실력을 보여줄 수 있겠어요? 한 3개월?” 이 질문에 짧은 순간이었지만 한참동안 생각한 듯하다. “3개월이면 제 실력을 보여드리기에는 너무 짧습니다. 정확히 1년만 주십시오.” 너무 고리타분한 대답이었지만, 그 다음날 채용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이렇게 해서 대학 4학년 때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브랜딩 회사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첫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대학생이 포트폴리오를 기업체에 넣어서 순전히 그것 때문에 취업이 되는 것은 흔치 않는 일이었다.

실력을 발휘할 꿈에 부풀어 있던 나는 기대와는 달리 막내로서 허드렛일을 하느라 매우 바빴다. 보통 1주일에 5일은 야근, 하루는 밤샘이었다. 일요일도 거의 어김없이 출근하였다. 그러니까 1주일 내내 출근에 야근이었다. 하지만 마냥 즐거웠다. 힘든 것은 못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밤샘하고도 다음날 출근해서 또 야근을 해 낼 수 있었는지 놀랍다. 그 덕분에 실무에서 배워야 하는 기간이 크게 단축되었다. 디자인포커스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실력있는 회사이면서도 따뜻함이 있는 가족같은 회사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만든 나만의 디자인이 클라이언트와 직접 만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 스토믹(주)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스토믹(Stormic)은 ‘Storm in Creativity’의 줄임말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지와 계획이 담겨 있는 회사 이름이다.
주변에서는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회사를 그만두고 그것도 IMF 이후 취업도 힘든 시기에 창업을 한다 하니 말렸다. 두 가지 이유인 듯 하다.

첫 번째는 아무런 연고나 백그라운드 없이 대기업의 일을 수주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는데, 디자인 업계는 아직도 인맥으로 일거리를 수주하는 관행이 많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그렇게 젊은 나이에 회사를 창업하여 운영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보통 회사를 창업하려면 디자인회사에서 10년 정도를 제대로(?) 배워야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20대의 젊은 나이에 회사를 창업하여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지금 벌써 스토믹㈜를 운영한 지 7년째니까 회사의 운영에 관한 문제는 어느 정도 입증된 셈이다. 스토믹은 2005년 대한민국 TOP디자인회사에 선정이 되었고, 2006년 GD(Good Design) 디자인회사(로만손, 새턴바스)로 선정되었다. 규모는 크지 않은 회사이지만 알차고 생산적이며, 감각적이고 실력있는 회사라고 평가받고 있다. 얼마 전에는 MBC의 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전반적인 Identity 작업을 부탁 받은 적도 있다. 대통령상 후보에도 올랐다. 디자인진흥원의 심사위원으로도 위촉받았다. 업계의 한 디자인회사 대표께서 나를 꼭 만나보고 싶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뭐라 말하기 힘든 뿌듯함을 느꼈다.

동서대학교 디자인학과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어느 그룹에서든 모든 사람의 생각과 지향점이 동일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자신의 10년 후를 내다보며 열심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대학 생활은 낭만이야’라고 생각하며 아까운 4년의 시간을 허비하는 친구들도 있다. 자신의 진로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지만, 주변의 분위기에 동요되지 말고 자신의 4년 후를 늘 생각하라는 것이다.

부산 지역의 어느 대학을 나와야 취업이 잘 되는가 하는 수험생들의 질문도 많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개인의 실력이다. 자신의 디자인 결과물이 현직 디자이너들과 비교했을 때 더 나은지 비교해 보라. 만일 그것이 습작이나 대학생의 졸업 작품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면 몇 배나 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디자인 전문 책들을 많이 봐야 한다. 요즘은 또한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국의 디자인과 문화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전문 서적과 인터넷을 잘 활용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화려하고 돈을 많이 벌면서 폼 나게 살 수 있는 직업이 디자이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아직도 있다.
그러나 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화려함을 쫓기보다는 자신이 만족할만한 일을 찾아야 한다. 대학 4학년 동안 젊음의 낭만을 찾지 말고 젊음의 가능성을 찾으라. 그렇게 한다면 분명이 자신이 바라는 디자이너가 되는 데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될 것이다.

한국은 매우 빠르게 변화하는 나라이다. 한국인의 정서가 빠른 것을 원하지 않는가? 이러한 변화는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도전이 되면서도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화려한 직업은 아니지만 분명 매력 있는 직업인 것만은 확실하다.

4월 24일 산업디자인학과 92학번 서석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