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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동서백일장 시상식 개최

조회 7,730

2020-07-08 16:17

민석교양대학 2020 동서백일장 시상식 가져
대상 1명, 최우수상 1명, 우수상 3명, 장려상 6명, 입선 50명 선정
산문 <아름다운 유괴>를 쓴 영화과 이진호 학생이 대상 영예
 
605명의 학생들 참가해 사이버 공간에서 창작 위한 고뇌 넘어
인문학적 감성과 지성 마음껏 분출

민석교양대학은 7월 6일 ‘2020 동서백일장’ 시상식을 가졌다.

2020 동서백일장은 코로나 19 상황으로 인해 현장에서 직접 글을 쓰는 아날로그 방식이 아닌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605명의 학생들이 참가하여 사이버 공간에서 창작을 위한 고뇌를 넘어 인문학적 감성과 지성을 마음껏 분출하였다. 학생들의 출품작은 표절심사를 거쳐 엄격하고 공정한 과정으로 수상작이 선정되었다.

심사 결과 대상 1명, 최우수 1명, 우수 3명, 장려 10명, 입선 50명이 선정되었으며, 대상은 <아름다운 유괴>를 쓴 영화과 이진호 학생에게 돌아갔다.

장제국 총장은 시상식에서 “코로나 19 상황으로 학생들이 학교에 오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운 가운데 동서백일장에 600여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여하여 반가웠습니다. 이번 백일장은 ‘미래사회에 대한 아름다운 성찰’이라는 주제 및 건학이념과 자유주제로 창작활동을 하였고, 특히 대상을 자치한 학생의 원고는 미래 사회에 소외될 수 있는 노인계층에 대해 젊은 학생들이 성찰하고 있음을 볼 수 있어 놀라웠습니다. 동서대학교 학생들이 현 사회에 관심이 많음을 반증한다고 보였으며, 계속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습니다” 라는 당부를 남겼다.

이진호 학생은 ‘미래사회에 대한 아름다운 성찰’을 주제로 자신이 노인이 되어 소외를 경험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과거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는 내용으로 사회가 첨단화 될수록 소외될 수 있는 노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를 제공했다.

동서백일장은 디지털 시대에서도 학생들의 감성과 생각의 폭을 넓히고 인문학적 소양을 높여주기 위해 매년 민석교양대학에서 개최한다.


2020 동서 백일장 대상 : 아름다운 유괴

글쓴이 : 영화과 이진호


오늘은 집이 여느 때와 다른 방식으로 후끈하다.
손자네 일가가 이 늙은 할머니의 집을 방문한 것이다.
고장 난 에어컨과 돌아가지 않는 선풍기를 차례로 만져보는 손자, 어디론가 전화하는 손자며느리, 울먹이는 그들의 딸.
사람 냄새라곤 TV 소리밖에 없던 이 집에서 TV를 꺼도 그 냄새가 진동한다.
손자며느리가 전화를 끊고 팔짱을 낀 채 말한다.
“내일이나 올 수 있다네, 에어컨 기사님.”
“놔둬~ 괜찮아.”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뱉어본다.
손자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나에게 말한다.
“큰일 나요. 뉴스도 안 봐요? 어떻게 버텼어요? 여태까지.”
손자의 꾸지람을 들은 나는 증손녀 수연이를 바라보았다.
수연이의 울먹임이 어느샌가 울음으로 바뀌며 얼굴을 가득 채운 땀이 눈물과 섞인다.
그때 손자가 일어서며 말한다.
“여보, 얼른 갔다 오자, 늦기 전에.”
“어딜?”
“선풍기라도 사 와야지. 할머니 나이도 있으신데.”
거듭 괜찮다는 나의 말이 수연이의 울음소리에 묻히고, 손자와 손자며느리는 문으로 향한다.
안 그래도 불그스름한 그들의 얼굴이 신발을 신으려 허리를 숙인 탓에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
손자며느리가 땀을 닦으며 말한다.
“딸~ 엄마랑 아빠 금방 갔다 올게. 뚝! 왜 자꾸 우니.”
“수연이도 더운갑지.”
그들이 집을 나선다.
그렇게 2060년, 일 년 중 해가 가장 가까운 오늘, 이 늙은 나와 울음을 그칠 줄 모르는 어린 수연이, 그리고 우리 둘을 빤히 쳐다보는 열기가 집을 가득 채웠다.

오늘 아침.
땀에 젖어 일어난 나는 밤새 틀어놓았던 에어컨의 날개가 움직이지 않는 걸 발견했다.
밤잠을 설친 탓에 잘 움직이지 않는 팔로 이불을 뒤적거리다 손에 잡힌 리모컨을 눌러보지만, 에어컨 대신 TV가 반응했다.
덜 깬 잠을 깨는 TV 소리에, 나는 손에 쥔 리모컨이 에어컨 리모컨이 아님을 깨닫고, 다시 에어컨 리모컨을 찾아 눌러보았다.
여전히 에어컨은 작동하지 않았다.
힘겹게 일어나 베란다로 걸어갔고, 창문을 열자 뜨거운 바람이 나의 땀을 따갑게 만들었다.
TV 소리가 들려온다.
‘보건당국이 조금 전 오늘 0시 기준, ‘한증막 더위’ 질환 환자 집계를 발표했습니다. 어제 하루 환자 삼백예순일곱 명이 늘어, 누적 환자는 칠천 명이 넘습니다. 사망자는 이백예순아홉 명으로 늘었습니다. 중앙 재난 안전 정부가 ‘외출 자제’를 권고한 지 약 두 달이 지난 가운데 온열 질환은 열사병, 열탈진, 열경련까지 그 증상도 다양합니다…’
사람 냄새가 나던 TV에서 고통스러운 사람들의 냄새가 들려오고, 침침한 내 두 눈엔 뉴스 속 구급대원들이 들어왔다.
한 여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들은 황급히 그녀의 온도를 잰다.
‘할머니, 열 좀 재볼게요. 38.5도. 열이 좀 많으시네?’
나는 기력을 잃은 그녀를 보며 언제부터 체온보다 기온이 높아졌는지를 의아해하던 와중, 그녀의 가녀린 팔과 손 주름에서 내 모습이 투영되었고 무서움과 고독함이 엄습했다.
그리하여 곧바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의 안부를 물으며 에어컨이 고장 났음을 안부의 그림자처럼 건넸고, 아들은 금방 다시 연락 준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몇 분 후 손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이 손자에게 떠넘긴 모양이다.
손자는 무더위 탓에 한동안 밖으로 나가지 못했던 그의 식구들을 데리고, 에어컨을 핑계 삼아 우리 집을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러한 손자의 말이 모순적으로 들렸다.
마치 더위를 피하려 에어컨이 고장 난 이곳으로 피서를 온다는 것처럼.
그렇게 그들이 우리 집에 오게 된 것이다.

“언제 고장 났어요?”
약 1년 만에 찾아온 손자의 첫인사는 내가 아닌 에어컨의 안부였다.
“한참 됐지.”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툭 튀어나왔다.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아마도, 에어컨이 아니었으면 오지 않았을 그들, 그리고 에어컨이 고장 난 기간을 늘림으로써 오랜 기간 연락 한 통 없었던 그들에 대한 서운함을 강조하기 위한 대답이었을 것이다.
서운함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민망하고, 이렇게 거짓말까지 하며 표현해야 하는 이 노인의 마음을 그들은 모를 것이다.
혹은, 알고 있어도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선풍기를 사러 나간 그들, 그리고 집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수연이와 나.
나는 울고 있는 수연이에게 부채질을 해주었다.
노인의 팔이 얼마나 힘이 없는지를 느낀 듯한 아이는 미안한지 나의 팔을 붙잡으며 부채질을 멈추게 하였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서서히 그쳤지만,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의 눈물마저 그치게 하고 싶어 대화를 시도했다.
“수연이가 몇 살이지?”
수연이는 나의 얼굴과 자신의 손을 번갈아 쳐다보며 손가락 일곱 개를 치켜세운다.
“일곱 살이야? 벌써 수연이가 유치원 갈 나이네? 유치원 재밌어?”
수연이가 고개를 젓는다.
“왜? 재미없어?”
수연이가 이번에는 고개를 떨구며 말한다.
“유치원 못 가요.”
나는 수연이가 대답을 해줬다는 것이 고마워 저절로 미소가 지어짐과 동시에 과거의 기억들이 연쇄적으로 떠올랐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받던 40년 전의 사회 모습이 지금과 굉장히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는 그 전염병을 잊을 정도로 무섭고 고통스러웠던 사건이 있었다.
“수연아,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해줄까?”
어느새 눈물이 멈춘 수연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고작 9살이었던 1981년.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으셨던 나의 아버지께서는 컬러TV를 집으로 가져오셨다.
흑백 TV도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저녁만 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많은 시선이 TV를 향하고 있었다.
‘1966년에 일어난 ‘심동화 유괴 사건’이 15년 만에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영원한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1966년 7월 5일 밤, 부산시 진구 개금동 1가 앞길에서…’
동네 사람들과 우리 가족은 이러한 충격적인 뉴스를 각자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혀를 끌끌 차며 담배를 피웠고, 누군가는 고향인 부산에 초점을 두었다.
“심 씨도 있나?”
또 다른 누군가는 피해자의 드문 성씨에 관심을 가졌다.
나는 컬러TV 속 흑백 영정 사진이 눈에 들어왔고, 나의 아버지는 흑백에 길들어진 눈에 들어온 컬러만이 그를 사로잡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에겐 그 뉴스가 훗날의 동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2020년, 해가 가장 먼 어느 겨울날.
TV를 보고 있던 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사모님 성함이 000씨 맞으시죠?’
“네, 맞는데요.”
‘이춘화 씨 따님 맞으시고요?’
“네, 네. 누구시죠?”
어머니가 칠순이 넘은지라 병원에서 온 전화인가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 두근거림이 무색하게 섬뜩한 말을 전해 받았다.
‘어머님이 저랑 같이 있습니다. 어머니 살리고 싶으시면 경찰에 신고하지 마시고 돈 준비하ㅅ...’
전화를 걸어 온 남성은 자신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스스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당혹스러움에 한참 동안 TV라는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엉성함을 핑계로 그 말을 믿지 않으려 했다.
그러면서도 유괴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엉성할 수도 있겠다는 이상한 생각도 들었고, 또, 엉성함에서 느껴지는 단호함이 유괴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한 생각들이 나를 어머니에게 전화하도록 만들었고, 어머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재차 걸어봐도 들려오는 건 그 어떤 스릴러 음악보다도 무서운 신호음뿐이었다.
나는 곧바로 어머니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괜히 확실하지 않은 일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남편에게는 전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집 앞에 도착한 나는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야만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곳에는 어머니 대신 한기만이 집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장모님 집은 왜? 여보세요?’
“...”
내 것이 아닌 듯한 심장은 밖으로 나오고 싶은 듯 요동쳤고, 남편의 물음에 나의 목소리는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은 듯 침묵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려봤지만, 어머니는 집에 오지 않았고, 그 긴 시간 동안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막막함과 죄책감이 나를 무릎 꿇게 만들었다.
어머니가 유괴된 것이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즈음.
꺼져있는 TV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은 그 색을 알 수 없음에도 무척이나 창백했다.
수차례 협박 전화에 시달린 우리 가족들은 지칠 대로 지친 건지 익숙해져 버린 건지 알 수가 없고, 한데 모인 핸드폰들은 충전기가 꼽힌 채 몇 날 며칠을 또 그 협박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 있을 힘은 없었고, 걸을 힘은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우릴 짓눌렀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의 생사를 모르는 와중에도 밥을 먹고, 몸을 씻고, 잠을 자야만 한다는 것이 그저 괴로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가장 괴로운 건 어머니가 사라진 후에야 머릿속이 어머니로 가득 찼다는 죄책감이었다.
‘누가 범인일까.’
‘언제 어머니를 볼 수 있을까.’
‘어디서 떨고 계시진 않을까.’
‘무엇을 생각하고 계실까.’
‘어떻게 해야 어머니를 볼 수 있을까.’
‘왜 하필 우리 어머니일까.’
줄줄이 늘어서는 걱정의 종착점은 항상, 살아만 계시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띵 동.’
핸드폰 대신 초인종이 울렸다.
소파에서 일어난 나는 머리가 핑 돌았다.
나는 벽을 짚으며 인터폰을 향해 걸어갔다.
인터폰 화면 속에는 건너편 집 담장만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리곤 현관문으로 아주 천천히 걸어갔다.
문을 열자 마당에 내리는 눈부신 눈이 나의 눈을 시리게 만들었다.
또다시 대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맨발임을 확인한 나는 이번에는 발이 시렸다.
그렇게 대문 앞에 다다르자,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고 힘겹게 대문을 연 나는 울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였다.
소녀처럼 울고 있는 어머니였다.
그녀를 마주한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남편이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옅은 미소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병원이었고, 잠시 기억을 더듬어본 나는 긴 시간 막혀있던 숨통이 트였다.
마치 내 몸에 안에 있던 불구덩이 하나를 제거하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만 같았다.
나는 부축을 받으며 병원에서 나왔고,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놀랍고도 희한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자신을 향한 가족들의 사랑이 부족함을 느꼈고, 그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누군가와 유괴라는 자작극을 벌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죄책감을 더는 견디지 못한 어머니가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나는 정신이 아찔했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머니의 터무니없는 계획이 그간 우리 가족을 엉망으로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오히려 담담해 보였다.
마치 어머니의 마음을 전부 이해한 듯이.
나는 눈물이 흘러나왔고 이를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창밖에 쌓인 눈은 유난히도 창백했고, 차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은 유난히도 하얗게 보였다.
그리고 집 앞에 도착한 순간, 대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떨고 있는 어머니를 보고, 나는 모든 것을 용서하기로 다짐했다.
그 다짐은 아마 한 달 동안 쌓아놓은 죄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거듭 미안하다는 말만을 반복했고, 우리는 공범을 묻지 않는 큰 결심을 했다.

그 이후에도 어머니는 늘 죄책감에 시달리셨고, 우리와 거리를 두려 하셨다.
다가가려는 우리를 어머니의 죄책감이 막아서는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는 5년 후에 결국 치매라는 병을 얻으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치매라는 병이 어머니에겐 죄책감을 치료하기 위한 처방처럼 다가왔고, 이제 그 사건은 우리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기에 우리도 어머니를 대하기가 한결 편해졌다.
그러한 지독한 병을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극진한 보살핌 덕에 어머니는 110세의 나이로 수연이가 태어난 2055년, 마치 바통터치라도 하듯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수연이 할머니랑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수연이를 향한 나의 이야기가 끝난 듯 끝나지 않았을 즈음, 손자와 손자며느리가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나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그들은 들고 온 선풍기를 황급히 작동시켰다.
회전하는 선풍기는 그들을 품었지만 나를 외면했다.
“내일 오전에 에어컨 기사님 오신 대요.”
손자가 말을 끝내자마자 수연이를 화장실로 데려가 세수를 시켰고, 손자며느리는 나에게 괴이하게 생긴 선풍기의 작동법을 알려주고는 화장실에서 나온 그들과 함께 집을 떠났다.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고 떠나는 그들은 에어컨 기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다음날, 나는 TV를 보고 있었고, 에어컨 기사가 집을 찾아왔다.
그는 에어컨을 빤히 쳐다보더니 팔짱을 낀 채 나에게 말했다.
“하이고. 이거 너무 오래된 거라 못 고칠 거 같은데요, 할머니?”
그 말을 들은 나는 생뚱맞게 괜찮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에어컨 기사도 집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그 누구에게도 전화하지 않았다.

‘그들’은 더 편한 삶을 살기 위해 계속해서 세상을 발전시키고 변화시킨다.
하지만 이 노인의 곁에 남아있는 건 이제 이 TV뿐이고, 변한 것은 이 더위뿐이다.
우리 같은 ‘노인’은 ‘그들’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발전의 잔재가 쌓여 모두를 기죽이는 듯한 무더위를 이루었고, 그로 인해 겨울에만 움츠리던 사람들은 여름에도 움츠림을 반복한다.
이러다 수연이가 나와 같은 노인이 됐을 즈음엔, 모두가 허리를 숙여 손을 땅에 짚고 다닐지도 모른다.
세상은 진화하지만, 인류는 퇴보의 길을 걷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나에게서 유괴가 일어나기 전까진 뉴스 속 유괴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어머니가 사라지기 전까진 어머니를 염두에 두지 못하고,
노년기에 접어들기 전까진 노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이 찬란한 더위 아래, 버티지 못할 열기를 마주해서야 위기를 느끼는 우리처럼.

그렇기에, 나에게서 그 사건은 어머니가 선물해 주신 ‘아름다운 유괴’로 기억된다.